우리 도시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지속 가능한 이동 수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날 많은 도시들이 자동차 중심 교통체계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 정체, 대기 오염, 그리고 건강 문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도보와 자전거 친화적 도시 계획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글에서 일본이 어떻게 이러한 성공을 이룩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의 도보 친화적 도시 설계
일본의 도시들이 보행자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공한 이유는 단순한 인프라 구축을 넘어선 종합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도쿄나 교토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물론, 중소규모 도시에서도 도보 친화적 설계 원칙이 잘 적용되어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도시 계획자들은 '워커빌리티(walkability)'를 도시 설계의 핵심 가치로 삼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보도를 넓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행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는 접근법입니다. 예를 들어, 교토의 역사적 지구에서는 보행자 전용 구역을 확대하고, 전통적인 마치야(町家, 상가주택)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보존함으로써 걷기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인 이동에도 편리함을 제공합니다. 둘째, 일본은 '컴팩트 시티'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토야마시의 사례가 대표적인데, 이 도시는 대중교통 중심의 개발(TOD, Transit-Oriented Development)을 통해 주거, 상업, 업무 시설이 대중교통 거점 주변에 밀집되도록 유도했습니다. 거주자들은 일상적인 활동의 대부분을 도보 거리 내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걷기를 생활화하는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이 모델은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전략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셋째, 일본의 도시들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여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센다이시는 보행자 도로의 단차를 최소화하고, 점자 블록과 음향 신호등을 광범위하게 설치했습니다. 또한 도시 전역에 휴식 공간과 공중화장실을 적절히 배치하여 노약자와 장애인도 불편 없이 도보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설계는 단순한 보행 환경 개선을 넘어 사회적 포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자전거 인프라 구축
일본의 자전거 이용률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도쿄에서는 전체 통근 통학 수단 중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16%에 달합니다. 이러한 높은 자전거 이용률은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과 제도적 지원에 기인합니다. 자전거 인프라 측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오사카부의 '자전거 레인 네트워크 계획'입니다. 오사카는 2010년대 초반부터 5년간 약 200km에 달하는 자전거 전용 도로를 구축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자전거 도로의 양적 확장에 그치지 않고, 안전성과 연결성에 중점을 둔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했다는 것입니다. 자전거 도로는 푸른색으로 도색되어 시각적으로 구분되며, 자동차 도로와 명확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요 대중교통 거점에서 상업 지구, 주거 지역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자전거의 실용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자전거 주차 시설도 일본의 자전거 친화적 환경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도쿄의 기차역 주변에는 대규모 지하 자전거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에코사이클(Eco-Cycle) 시스템은 자전거를 지하에 자동으로 보관하고 필요할 때 불러올 수 있는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편리한 주차 시설은 자전거와 대중교통의 연계를 강화하여 복합 수단 통행(multi-modal journey)을 촉진합니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자전거 활용 추진법'(2016년)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법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전거 이용 환경 개선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책임을 명시했습니다. 또한 교육청과 협력하여 학교에서부터 자전거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기업들이 직원들의 자전거 통근을 장려하도록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포괄적인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도쿄의 경우 '자전거 활용 마스터플랜'을 통해 2025년까지 자전거 분담률을 20%까지 높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참여와 문화적 수용성
일본의 도보 및 자전거 친화적 도시 조성 성공에는 물리적 인프라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참여와 문화적 수용성입니다. 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균형을 이루는 접근법으로,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많은 도시에서는 '마치즈쿠리'라 불리는 커뮤니티 기반 도시 계획 방식을 적용해 왔습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도시 계획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그들의 필요와 의견을 반영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법입니다. 예를 들어, 가나자와시에서는 역사적 거리 경관을 보존하면서 보행 환경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습니다.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정기적으로 모여 보행로 디자인, 가로수 선택, 심지어 포장 재료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사항들을 논의했습니다. 이러한 참여 과정은 단순한 의견 수렴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주인의식(ownership)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교육과 캠페인을 통한 인식 개선도 중요한 전략이었습니다. 일본의 학교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걷기와 자전거 타기의 중요성을 교육하며, 특히 자전거 안전 교육은 정규 교육과정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야마시의 '워킹 포인트'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걸음 수를 측정하고 일정 목표를 달성하면 지역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보상하는 혁신적인 접근법을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요소는 시민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기업과의 협력 또한 문화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도쿄에서는 여러 기업들이 '에코통근'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직원들의 자전거 통근을 지원합니다. 사무실 내 샤워 시설 설치, 자전거 구매 보조금 지급, 심지어 자전거 통근 시 추가 휴가 제공 등의 인센티브를 통해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이러한 기업 문화의 변화는 단순한 인프라 개선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사회적 인식 전환에 기여했습니다. 일본의 도보 및 자전거 친화적 도시 조성 사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인프라 구축을 넘어선 종합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리적 환경 개선, 제도적 지원, 그리고 문화적 수용성이 균형 있게 발전할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한국의 도시들도 최근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인프라 개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습니다. 특히 '컴팩트 시티' 개념은 우리의 고밀도 도시 환경에 적합한 모델로, 대중교통 중심의 개발과 함께 추진한다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저한 적용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에 특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